내가 목사안수를 받을 때 실수한 일이 있었다.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내가 고등학생일 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복음교회에 나갔는데 우리 가족과 너무 맞지 않아서 1년 만에 소망교회로 옮겼다.
소망교회에 다닐 때도 일요일과 수요일의 모임에만 참석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심방을 비롯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함께 교회 일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던 사람과 나 같은 사람은 차이가 크다.
특히 심방이나 행사에 대한 대처가 아주 다르다.
나는 심방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겠다.)
교회에서 일하던 전도사가 목사 안수를 받는 일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중소형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는 사람이 나오게 되면 그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일들이 꼭 필요하거나 좋다는 것이 아니라 실상이 그렇다는 거다.
이걸 내가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신대원을 졸업한 후 전임 경력을 쌓아야 하고 목사 고시도 합격해야 한다.
본인이 일하는 교회가 그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해달라고 노회에 요청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준비할 것들이 꽤 있는데, 교회가 거부하면 안수를 받을 수 없다.
노회의 교육 과정도 있다.
꽤 중요하지만 소소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다.
안수를 받을 때 입는 목사 가운을 마련해야 한다.
그때도 설교할 때 입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각종 예식 때 입기 위해서 준비해야 했다.
보통 교회에서 해준다.
사모는 한복을 입어야 해서 새로 맞췄다.
이건 자비로 했다.
그 외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는데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들었다.
'답례품은 어떻게 준비할 거냐.'는 거였다.
왜 준비해야 하는지를 물으니 뜻밖의 이야기를 해준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 마치 결혼식장처럼 책상을 놓고 봉투를 받으니 그 준비를 하라는 거였다.
내가 목사 안수를 받는데 왜 교인들이 봉투를 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봉투를 받는 책상을 놓지 않겠다고 하고 답례품도 준비하지 않았다.
사실 이때 담임목사가 나를 앉혀 놓고 가르쳐줬어야 했다.
선배로서 해줄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 사람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 수 있다.
군목 출신이거든.
목사 안수를 받는 당일 노회가 한참 진행 중일 때,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실수한 것 같아. 답례품을 준비하지 않았잖아."
"무슨 일인데?" 내가 물었다.
"교인들이 축하한다고 하면서 직접 봉투를 주었어." 아내가 말했다.
그랬다.
교인들은 나를 축하하기 위해 행사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봉투까지 준비했는데 봉투를 받는 책상이 없으니 당황했고, 가져온 것을 다시 가져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아내에게 직접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 전달했던 것이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난감했다.
'이를 어쩌지.'
나는 봉투를 받는 일이 큰일이 아니라 생각하여 책상을 놓지 않기로 했는데, 오랜 세월 그렇게 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일반적인 중소교회는 대부분 그렇게 한다고 했다.
노회가 다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그렇다고 봉투를 다시 돌려줄 수는 없었다.
따로 답례품을 준비할지 생각도 해봤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그 교회에서 나보다 늦게 안수를 받은 목사도 미리 알고 준비했다.
후에 다른 교회에서 일할 때 만난 후배들도 이미 알고 있었고 그에 따른 준비를 했다.
나만 몰랐던 거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목사 안수식에 축하하러 온 교인들이 봉투를 왜 주는지, 혹은 왜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교회는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목사 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스승이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출발점에 선 목사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하고, 그 각오를 매일 새롭게 해야 한다.
일단 목사가 되면 본인의 의지로 사직하거나, 문제를 일으켜 면직되지 않는 한 평생 그 타이틀을 가지고 갈 수 있다.
그래서, 더 엄숙해야 한다.
그래야 할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건 온전히 목사의 잘못이다.
'목사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오스에 가 있는 그놈이 목사 안수 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번 노회에 목사 안수를 받기만 해봐라."
그놈은 전에 있던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켜 안수받기 전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안수를 받으면 웬만하면 면직되지 않는다.
이놈에게 '목사'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어쨌든 내 생각은 내 생각이고, 그때 나에게 봉투를 준 교인들의 정성어린 마음에 대해서는 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당시, 일개 전도사가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전통아닌 전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여전히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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