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예수님 정신의 핵심은 저항과 증오다

눈빛 2021. 10. 1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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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아래 링크를 걸어 놓은 기사를 읽기 바란다.

 

나는 신학교를 27세에 입학했고 신대원은 31세에 입학했다.

학생들 대부분이 나보다 한참 어렸는데, 사실 그들이 어린 것이 아니라 내 나이가 많은 것이었다.

 

학생 가운데 한 명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형,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싶어요."

"예수님의 사랑이 어떤 건데?"

"누가 나를 때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요. 그런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바로 이런 거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의 화신이기 때문에 우리도 일단 무조건 사랑과 용서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아래 기사에서도 인용한 산상보훈을 든다.

 

이런 오해는 기독교인을 사랑과 용서에 대해 강박증에 걸린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평생을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로 받아들이게 강요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 때문에 기독교인은 늘 괴롭다.

 

아래 기사도 그런 강박증이 보인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사랑과 용서로 받은 분이라고 착각한 데서 오는 강박이다.

그건 환상이다.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의 화신임과 동시에 저항과 증오, 복수의 화신이기도 하다.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져온 것은 저항과 증오다.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고 저항하고 증오했다는 이야기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세상."

 

복음서를 제대로 읽어 보라.

예수님이 정말로 모든 사람을 사랑했는지.

절대 아니다.

 

사람들을 율법에 속박시키는 종교인들,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는 부자들, 로마에 빌붙어 먹고 사는 매국노들.

정의로운 세상을 망가뜨리는 이들에 대해, 절대 꺾이지 않는 저항과 증오가 성서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정수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저항하고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예수님이 예뻐 보일 리 없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예수님을 제거해버렸다.

 

대한민국의 교회 중에서 예수님의 이런 면에 대해 솔직히 말하는 교회가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교회가 예수님에 대해 말한다고 하면서도 이 부분은 쏙 뺀다.

대신, 감성을 자극하는 일방적인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과 화해만을 강조한다.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교회다.

 

이렇게 되니 사회에서 예수님의 정신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데, 예수님이 그렇게도 미워하신 사람이 되는 놀라운 기적.

사회 곳곳에서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면서도 전혀 죄책감이 없는 수많은 기독교인이 양산되는 구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데,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전혀 모르니 그런 가르침이 나올 수 없다.

 

예수님이 하지 않으신 일을 가지고 잘 알아듣지도 못할 글을 써대는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먹고 살기 편해서 좋겠다.

 

 

 

 

마태 공동체가 예수를 통해 발견한 '거룩함'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

화해, 원수 사랑, 박해자를 위한 기도…내면의 존엄과 신성을 되찾아 가는 길

www.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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