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기독교는 자기를 돌아볼 줄 모른다

눈빛 2021. 8. 1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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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로 시작해서 엄청난 인기를 얻은 방송들이 있다.

지금은 유튜브에도 진입했다.

 

이들의 공통된 인기 비결은 '공격'이다.

적을 상정하고 최대한으로 공격하는 거다.

공격은 강하고 날카로울수록 좋다.

조금이라도 무뎌지면 오히려 그 방송이 청취자의 공격대상이 된다.

 

그 방송들은 클릭 수로 먹고 산다.

청취자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방송을 찾아다닌다.

방송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쨌든 입맛에 맞는 방송을 찾을 수 있다.

약삭빠른 놈들은 맞춤방송을 만들기도 한다.

청취자는 결국 돈이니까.

 

그들의 중심에는 신앙과도 같은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신념은 보수적인 신앙과 닮았다.

보수적인 신앙은 강한 '자기'가 중심에 있고, 그곳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이 외부로 나온다.

 

문제는 '자기'들의 '신념'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거다.

'자기'는 변화의 대상도 아니고 비판의 대상도 아니다.

무조건 인정받아야 하는 불가침의 성역이다.

 

절대로 '자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

방송은 무조건 밖으로 공격해야만 하고 안으로는 계속 빨아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보수적인 교단처럼 계속 갈라지고 있다.

 

 

기독교 방송도 이와 비슷하다.

밖으로는 강한 공격, 안으로는 '네가 맞다'는 달콤한 말을 계속 쏟아내야 한다.

교회 설교와 기독교 매체의 방송 모두 동일하다.

혹시라도 안을 건드리면 강한 저항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방송에서는 공격할 만한 주제가 별로 없다. 
사이비에 대한 공격 정도?
기독교 내의 부조리나 악에 대해서는 망설여진다.

아주 적은 수의 매체가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욕을 많이 먹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기독교 방송의 내용은 그게 그거다.
'은혜'라는 말로 포장한 마약과도 같은 존재다.

반성도 발전도 없다.
그저 은혜입니다, 라는 말로 그 뒤에 숨은 모든 악을 덮어버린다.
범죄로 이루어진 부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고, 직원을 착취해서 번 돈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하고, 온갖 잘못을 저지른 놈들이 가짜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의 용서라고 한다.
볼수록 역겹고 지겹다.

'내'가 개혁해야 하고, '내'가 바뀌어야 하고, '내'가 정직해야 하고, '내'가 공부해야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방송은 외면받는다.

교회 설교가 이 모양인 이유도 같다.

교인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변해야 한다, 고 설교하는 목사는 절대 환영받지 못한다.

 

 

입으로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도 같다.
내가 불행한 건지 몰라도, 목사, 장로, 집사 중에 개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우리 교회의 이런 문제는 불합리하니 바꾸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사람 중에 동참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못 봤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그들에게 취미생활이니까.

 

나는 팟캐스트, 유튜브를 통해 개혁을 부르짖었었다.

하지만 계속 이어나갈 힘을 얻지 못했다.

 

나는 세례자 요한이 아니다.
셰레자 요한은 견디다 못해 예수님께 질문했었다.
자기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냐고.

난 물어볼 사람도 없고 듣는 이도 없다.

 

그래도, 블로그에서 글로는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공책에 글을 써도 처박혀 있을 것인데, 여기는 어쩌다 한 사람이라도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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