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비량 목회를 꿈꾼 적이 있었다. 교회에서 월급을 받지 않고 온전히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바울의 자비량 목회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면도 있었고, 프란시스에 대한 책을 섭렵해서 읽다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자비량 목회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자비량 목회의 옳고 그름에 대한 입장 때문이 아니라 일의 경중에 대한 판단 때문이다.
목회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는 목사가 다른 직업을 병행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매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런 상황이면 목회를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뉴스엔조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인테리어', '화물 운전', '양계', '카페'…제2 직업 찾는 목회자들로 북적인 '사회적 목회 콘퍼런스.' 기사를 보면, 그야말로 투잡 의미의 내용도 있고 복지시설 등을 세워 돈벌이하는 일도 있으니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동일하다. '그런 일을 할 거면 목사직을 내려놓고 사업에 힘쓰라.'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내 체력과 두뇌가 한참 모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성서를 읽고 연구하여 설교와 성서 공부를 준비하고, 기도와 묵상으로 정진하는 일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종교 지도자라면 그 일에 전념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청년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목사님들이 미울 때가 있어요. 목사님은 주일에 일하고 월요일에 쉬잖아요. 우리는 일주일 내내 힘들게 일하는데 주일에 쉬지도 못하고 교회에서 봉사해요. 봉사를 열심히 하고서도 좋은 말을 못 들을 때가 많아요. 교회에서 봉사하기 싫어요."
나는 신대원에 다닐 때 형편이 어려워서 휴학을 하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한겨울에 종일 길에 서서 지나가는 차량을 세는 일,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일, 새벽부터 아파트 문에 제품 샘플을 걸어 놓는 일, 회원 정보를 입력하는 일, 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화번호를 다 파악해서 오는 일 등등,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일을 하고 말이다.
전임 전도사를 하다가 교회에서 나왔을 때는 입시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1년 정도 했었다. 오후에 출근하고 새벽에야 퇴근하는 고된 일이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 농사만으로는 부족해서 산불감시원과 공공근로도 했었고, 밤에는 졸면서 웹진 편집하는 일을 했었다. 쓰리잡을 했던 거다.
농사에 실패한 후 과외도 하고 정수기 관리일도 하고 건강 신발을 납품하기 위한 영업도 했었다. 이런 여러 경험 덕분에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다. 혹시 교회를 다니고 있다면, 일주일에 한 두 번 교회에 가서 무엇을 얻고 싶은가? 예배가 목사의 설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찬양과 기도도 큰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가장 큰 힘을 가지는 설교가 어떻기를 바라는가?
주중에 다른 직업으로 열심히 일하는 목사들은,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 교인들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교인들이 그 경험을 높이 평가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혹시 일도 열심히 하고 성서연구도 열심히 하는 수퍼맨 목사를 바란다면 그건 망상이다.
아무런 사회 경험이 없는 목사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만 지껄일 가능성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목사가 된 멍청이들을 많이 봤다. 목사 탈을 쓴 소시오패스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놈들이 자본력과 연줄로 온갖 해악을 끼치고 있다. 특히 세습이 이루어진 교회는 최악이다..
성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치열한 사회 경험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는, 목사가 제2의 직업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 있다면 목회를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원칙적으로는 교단에서 책임져야 하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소리니 접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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