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깨달음이 필요하다

눈빛 2021. 11. 1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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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2학년 때인가?
늦게 학교에 들어가서 나이가 이미 28세가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앙심 좋은 젊은이였다.

모태신앙은 아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몸에 병이 생겨서 휴학하고 요양하던 때부터 본격적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릴 때 동네 교회에 가끔 나갔고 한 달 이상 다닌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교회를 매우 싫어하던 아버지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다녔다.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순복음 교회였는데 우리 가족과 맞지 않아서 1년도 되지 않아 소망교회로 옮겼다.
이후 1985년에 제주도로 요양을 떠나 그곳 예장 통합 측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성경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특히 찬양을 좋아해서 찬양단 봉사도 하는 전형적인 교회 청년이었다.

신학교 1학년 때도 별 차이가 없었다.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신앙과 별 차이가 없는 신학 교육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스스로 방어하면서 자랑스러워했을 거다.

2학년 때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늦게 시작한 공부여서 그런지 시간을 아껴가며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했다.
국내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외국 서적을 구해 읽으면서 신학적 사고도 확장하고 영어 공부도 하는데 재미를 붙였다.

그러다가 놀라운 책을 만나게 된다.
하버드 신학교(Harvard Divinity School) 교수인 Elisabeth Schüssler Fiorenza의 Revelation: Vision of a Just World (1991)이다.
그때가 1993년이었으니 당시로써는 최신 서적이었다.
수사학적 분석을 통해 요한계시록의 사회정치적인 위치와 신앙적인 의미를 밝힌 책이다.
조금씩 매우 힘겹게 읽기는 했지만 읽을 때마다 매우 즐거웠다.

그때 알게 되었다.
신학의 세계, 학문의 세계가 너무나도 넓다는 것을 말이다.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중도보수적인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 공부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내가 스스로 책을 찾아가며 더 넓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 도서관에도 비치된 외국의 최신 저널과 신학 서적은 그냥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을 뿐이었고, 강단에서는 매년 똑같은 내용이 되풀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대원에 들어가서도 똑같았다.

그때 깊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교회의 신앙은 아주 오래전 미국에서 성행한 극보수적인 신학과 신사고 운동이 결합한 형태다.
문제는, 목사 대부분과 교인들이 자기들의 신앙이야말로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진리를 믿는 순수한 신앙이라고 믿는다는 거다.
사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 제각각인데, 자기중심으로 신앙을 결정하기 때문에 대화가 되지 않고 늘 다툼의 여지가 있다.
보수 교회라고 자청하는 교단들의 분열이 극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장 통합 측은 자기가 중도라고 말하지만, 보수 꼴통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다.
가톨릭이 이단이라고 말하는 목사를 여럿 봤다.

교회 성경 공부 시간에 교회사를 강의한 적이 있는데 담임목사 사모가 듣다가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도사님은 가톨릭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거예요?"

내가 꽤 오랫동안 부목사로 근무했던 유명한 교회의 담임목사도 가톨릭은 이단이라고 믿고 있었다.
미국물도 먹은 사람이 말이다.

목사도 이러니 일반 교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가르쳐야 하는가.

신대원 입학 면접 시 면접 담당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신약신학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신학 내용을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까 말아야 할까?"

지금은 목회하고 있지 않으니 교인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인터넷을 통해 가끔 소위 '신앙인'들의 글을 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너무 답답하다.
우물 안 개구리 정도가 아니라 개미굴 속에서 한 번도 밖에 나온 적이 없는 애벌레 같다.

길지 않은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조금 읽다가 뒤로 가기를 눌렀을 것이다.

혹시 이 글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칭찬해주고 싶다.
나에게 욕을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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