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잘못을 고백합니다

눈빛 2021. 10. 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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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골교회 담임으로 취임한 후 그 교회에 꽤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그 전에 부목사로 일하던 교회 때문이었는데 교인들은 적잖이 당황했던 모양이다.

특히 국회의원까지 오는 바람에 산골 교회 교인들이 많이 놀랐었다.

어떤 권사는, "목사님이 오시니 국회의원도 오고, 처음 보는 일이에요."라고 했다.

 

그러던 중 이전 교회의 어느 집사 부부가 방문했다.

남편 집사가 이직하게 되어 퇴직금을 받았는데, 퇴직금의 십일조를 내가 일하던 시골 교회에 헌금하겠다는 거였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6백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던 것 같다.

내가 새로 부임해서 일하는 교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전했다.

헌금에 대해 내가 참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주일에 그분들의 이름으로 헌금했다.

 

그 헌금 봉투를 보고 교회 장로들이 많이 놀랐다.

이 사람들은 내가 그 교회에 부임하니까 국회의원도 오고 헌금도 많이 들어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헌금은 헌금일 뿐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며칠 후 재정을 담당하는 장로가 사택으로 찾아왔다.

장로는 "목사님 이거 받으세요."라고 하면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돈이었다.

2백만 원.

 

나에게 주는 이유를 들어보니 너무 황당했다.

헌금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그런다는 거였다.

전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내가 물었다.

"장로님, 이 돈이 교회 재정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십일조로 들어온 것에서 지출될 수 없잖아요."

"예비비에서 지출하면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헌금 리베이트인가? 이 사람들이 헌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대로 거부하고 그 장로는 장로대로 고집을 부려서 결국 해결되지 못하고 봉투만 사택에 놓고 가버렸다.

 

장로가 떠난 즉시 선임 장로에게 전화했다.

"장로님 이건 어떤 명목으로라도 안 됩니다. 재정 담당 장로님이 다시 오셔서 가지고 가라고 하세요."

"목사님, 그냥 받으세요."

한참을 실랑이했다.

선임 장로는 자기들의 처지도 이해해달라고 하면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봉투만 또 남게 되었다.

그걸 다시 헌금함에 넣고 싶었으나 뜻대로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져서 당시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을 위한 등록금으로 사용했다.

내가 갑자기 큰 병에 걸리는 바람에 마치지도 못했던 그 과정을 위해서 말이다.

 

내가 그 봉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일은 아직도 후회되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내가 저지른 잘못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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